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성근/지도자 경력 (문단 편집) === 김성근 태평양의 시작, 오대산 극기훈련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suxmedia.com/1405671511.jpg]]}}} || || [[파일:태평양 돌핀스 엠블럼(1988~1993).png|width=35]] '''김성근 돌핀스의 상징 오대산 극기훈련(1989년)''' [* 광고에 나오는 모습과 달리, 실제 오대산 극기훈련 때 김성근 감독은 시즌 구상을 위해서 선수들을 따라가지 않고 숙소에 혼자 틀어박혀 있었기 때문에 선수단의 불만이 팽배했다.] || 김성근 감독 선임 후, 태평양은 대대적인 투자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그가 원한 코치들을 모두 영입하였고, 김성근이 요구한 선수들을 대거 영입했다. [[이충우]], [[정영기]], [[천창호]], [[김한근]], [[이광길]][* 저니맨으로 유명했던 선수로 이 시기를 기점으로 김성근 사단에 합류, 이후 쌍방울 레이더스와 SK 와이번스를 거쳐 심지어 김성근 감독 은퇴 후 최강야구 출연까지 김성근 사단의 중심 코치로 활약하고 있다.] 등 베테랑 선수들을 영입했고, 시즌이 시작한 후에도 지속적인 트레이드로 선수를 보강했다. 다만 김성근은 훗날 태평양을 ''''외인구단'''', ''''이팀 저팀에서 선수들이 모여든''' 오합지졸이었던 팀'이라고 표현했다. 이는 태평양을 자기가 잘 조련했다고 자화자찬하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인데, 이 말은 그만큼 김성근 재임 기간 동안 타팀으로부터 많은 선수들을 영입했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발언이다. 그리고 김성근 감독은 첫 시즌인 1989년 1월, 6박7일 간의 오대산 극기훈련을 실시했다. 당시 김성근 감독은 이에 대해 “당시 선수들 사이에 패배의식이 너무 뿌리깊었어. 또한 트레이드도 많고 팀도 어수선했지. 그 이전부터 인천팀에는 여기저기서 온 선수들로 구성되다보니 파벌이 심했어. 그래서 극한상황으로 내몰아 하나로 만들고 싶었던 것이야. 말 그대로 팀이라는 개념이지”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당시 태평양 돌핀스는 신생 팀 특유의 외인구단 성향이 강했는데,[* 이는 이후 쌍방울 레이더스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신생 팀들 중 구단 지원이 유달리 빠방했던 빙그레 이글스 정도를 제외하면 모두 다 한번씩은 거쳤던 과정이었다.] 당시 팀을 대표하는 베테랑 선수였던 [[김일권]], [[김윤환(1957)|김윤환]]이 해태에서 오는 등 타 구단 소속 선수들이 팀에서 밀려난 상태에서 모여든 팀으로 기존 인천 선수들과의 알력 싸움이 심하였다. 이는 당시 분위기상 더했는데, 당시에는 연고지 의식이 지금보다 훨씬 강했고 원맨팀이 당연시되는 상황 속에 트레이드가 당연한 것이 아니라 선수를 해당 팀에서 추방한다는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선수협 사태 당시 최동원 트레이드가 대표적. 대표적으로 김일권은 [[해태 타이거즈 불고기 항명사건]]으로 당시 감독이었던 김응용 감독에게 제대로 찍힌 상태에서, 그 후계자인 [[이순철]]이 성장하면서 대체가 가능해지자마자 팀에서 쫓겨나듯 태평양으로 넘어온 선수였다. 따라서 이런 팀 분위기를 쇄신하고 하나의 팀으로 뭉치게 해야 하는 것은 분명 필요한 작업이긴 하였는데, 그 방식으로 김성근은 오대산 극기훈련이라는 희한한 수를 들고 나온 것. 구단은 이런 극기훈련의 실효성의 의문을 품으면서 극기훈련을 반대했고, 당연히 훈련 비용도 일체 지급하지 않았다. 그러자 김성근은 '''선수들에게 비용을 내라고 하면서까지''' 훈련을 강행했다. 일부 고참 선수들 또한 이런 훈련이 무슨 효과가 있겠냐면서 반발하였다. 당시 태평양의 주전 포수 [[김동기(야구)|김동기]]는 이때 '''"칼이라도 쥐어준다면 당장 목에다 찔러주고 싶었다."'''고 1989 시즌뒤에 인터뷰에서 얘기했고, [[김일권]]은 오대산 훈련에서 얼음물 입수하자마자 튀어나와서 '''"야이 십새캬!!"'''라고 욕설을 했다(....) 김일권 뿐만 아니라 다른쪽에서도 욕설이 터져나왔다고 한다. 재일교포인 [[김신부]]는 이때 연봉 1억을 준대도 싫고 당장 일본으로 돌아가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밝혔다. 오대산 극기훈련은 1983년부터 연재되어 큰 인기를 끌고 1986년 영화로까지 제작된 공포의 외인구단에 나오는 실미도식 지옥 훈련의 실사판이었다. 김성근은 반발하는 선수들은 2군으로 보내겠다는 협박에 가까운 통보로 선수들의 반발을 억지로 무마했으며, 극기훈련 이후로도 지옥 훈련은 계속되었다. 당시 김성근 감독의 아메리칸 펑고 훈련이 너무 힘들었는데, 당시 김일권의 말에 의하면 똥물까지 게워냈다고. 당시 김일권은 김성근에게 "야 이 개xx야 쳐라!" 소리치고 김성근은 아랑곳하지 않고 "알았다 xx야"하면서 쉬지않고 타구를 날렸다는 일화가 전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김일권은 생애 첫 3할 타율을 기록하고 골든글러브를 수상하였으며, 1989 시즌 62개의 도루를 기록, 자신을 밀어낸 해태 이순철과의 도루 경쟁에서까지 승리하며 도루왕을 되찾아왔다.] 당시 오대산 극기훈련 후, 김성근은 태평양을 포스트시즌에 올려놓아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하지만 실제로는 훈련 도중에 부상자가 속출해서, 당시 김성근 감독도 꽤 마음을 졸였던 모양이다. 정작 원조 태평양은 다음해 3박 4일로 일정을 대폭 축소했고, 훈련 내용도 훨씬 완화되어 거의 형식적으로 실시했다. 나중에 SK 감독 시절 김성근 감독은 '''하면 안 되는 훈련'''이었다고 웃으며 말하기도 했다. 이 사건은 [[이광환]] 감독의 메이저리그식 자율 야구 이전 한국 야구의 한계로 곧잘 지적된다. 하지만 이러한 극기훈련과 같은 퍼포먼스는 당시 외인구단이었던 태평양의 특성상 어쩔 수 없이 필요했던 것은 맞다고 볼 수도 있다. 팀 전체가 구심점이 없이 서로 내부에서부터 갈등하는 상황에서 가장 좋은 전술은 확실한 [[외부의 적]]을 상정하는 것이었고, 김성근 감독은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적으로 상정하는 전술로 접근한 것. 정작 김성근 감독이 극기훈련에 참여하지 않았던 것은 사회학적으로 보면 이러한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고, 적어도 이런 방식을 취하면 팀을 단기간에 빠른 속도로 응집시킬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그것이 선수를 다치게 할 수 있는 혹사의 방식이었다는 것이 문제. 다만 그런 맥락도 없이 극기훈련이 성과를 보여준 것이라고 타 구단들은 생각했고, 곧바로 그해 겨울인 1990년 삼성, OB, 롯데 등이 태평양과 유사한 혹한기 극기훈련을 실시했다. OB는 태평양처럼 오대산에서, 롯데는 해병대에 의뢰해 한겨울에 유격훈련을 했다. 삼성 구단은 김성근의 지옥훈련에 크게 감명받았는지 그해 겨울에 2차례나 극기훈련을 실시했다. 우선 1월 6일부터 3박4일산 팔공산에서 극기훈련을 한 후 2월 3일 다시 선수들을 소집해 서울 근교의 한 공수부대에 입소해서 극기훈련을 치뤘다. 혹독한 훈련 속에서 막 현역을 은퇴하고 코치로 부임했던 [[권영호]]가 실신하여 앰뷸런스에 실려가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1990년 '''혹한기 극기훈련을 실시한 4개팀은 공교롭게도 그해 시원찮은 성적을 거두었다.''' 삼성은 전년도와 같은 정규시즌 4위에 그쳤고[* 이후 코시 진출], OB는 5위에서 최하위인 7위로 떨어졌다. 극기훈련의 원조인 김성근의 태평양도 3위에서 5위로 떨어졌다. 전년도 꼴찌(7위)였던 롯데만이 6위로 겨우 최하위를 면했을 뿐이었다. '''반면 혹한기 극기훈련을 실시하지 않은 나머지 3개팀은 그해 정규리그 1~3위를 독식했다'''. 정규리그 1위인 LG, 2위 해태, 3위 빙그레 등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상위 3팀은 모두 동계 극기훈련과 무관했다. 때문에 1990년 열병처럼 퍼졌던 동계 극기훈련 붐은 한해 반짝하고 사그러들었다. 훗날 삼성 류중일 감독은 1990년 반짝 유행했던 김성근식 동계 극기훈련은 [[https://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09&aid=0003020607|아무런 효과도 없었고 선수 부상만 발생시켰다]]고 비판하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